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3년 6월 26일에 작성되었던 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목은 첼로. 당시 학교에 방과후학교(특기적성) 활동으로 첼로부가 새로 생겨났고, 당시 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우던 모습을 보고 저도 첼로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첼로부에 신청을 했었습니다. 처음으로 악기를 받고 레슨을 받게 된 그날의 일기입니다.


복합기의 스캔기능을 활용하려 했지만, 드라이버 문제인지 인식을 하지 못하여 당분간은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제목: 첼로


오늘은 첼로를 하는 날이다. 

모두들 상상보다 너무 작은 첼로는 바이올린 2개를 위로해서 놓은 것 처럼 조그만하였다.

나는 4분의3을 샀는데 어떤 2학년은 첼로가 자기 자신 키 정도 되었다.

첼로는 키는 작고 체중은 많이나가는데 비만도로 보면 아마도 고도 비만일 것이다.

다음주 목요일에 첼로를 가지고 오면 거대 트라이앵글(합주부용)처럼 한번 쳐봐 할 것이고

나 만져볼게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본 그대로를 옮겨왔습니다.


뭐 초등학생이 작성한 글이라 문맥상 난해한 부분도 있는데 풀어서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아마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은 아닌걸로 회상합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날 수업 중간에 나가서 어떤 사이즈의 첼로를 사야할지 측정을 해 갔었고 첫 수업이 있었던 이날 처음으로 첼로를 보고 다루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된 것입니다. 첼로를 처음 보게 된 저는 키가 작고 뚱뚱했던 첼로를 보고 비만도를 따지자면 고도비만이 아닐까 생각했었고, 당시 2학년이던 첼로를 같이 하던 동생은 그러한 첼로가 자신의 키만했었다고 일기장에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첼로부 인원은 당시 전교생 800명 수준의 학교에서 약 여섯명정도. 당시 기준으로 2학년 둘에 저와 같은 학년에는 여자애가 있었고, 그 위로는 5학년 선배 둘이 있었습니다. '거대 트라이앵글'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4학년때까지 리드합주부에서 트라이앵글 연주를 맏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트라이앵글은 흔히 보던 작은 트라이앵글보다 조금 컸습니다. 그러했던지라 커다란 트라이앵글을 다들 신기하게 보았었는데, 그러한 트라이앵글처럼 첼로 역시 궁굼해 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는 예상이였습니다.


첼로 수업을 처음으로 받게 된 2003년 당시 돈으로 35만원을 주고 제 체격에 맞는 4분의 3 사이즈의 첼로를 구입했고 현재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진행하면서 한달에 4만원씩 방과후학습비를 내었던걸로 기억하네요. 예상대로 첼로를 가지고 다니면 다들 궁굼하고 신기하게 보았었고, 이후 바이올린부와 함께 현악부를 구성하여 현악합주 대회에 나갔었습니다. 


이 당시 알게 된 선생님과는 중학교 1학년 가을까지. 그 이후로 다른 선생님께 중학교 2학년 여름까지 첼로를 배웠었습니다. 현재는 제가 다니던 모교에 바이올린부는 존재하지만 첼로부는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으며, 첼로 그리고 현악부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앞으로 드문드문 올라올 이야기들로 이어 갈 예정입니다.


되돌아보면 첼로를 배우겠다고 할 당시였는지 그 직후였는지 금전적으로 집안 사정이 잠시동안 좋지 못했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첼로를 배운다는데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던 부모님께 감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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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지난 달 장학금 서류를 가져다 주겠다고 학교를 나간뒤, 한달째 연락이 두절되었던 김은비사건이 결국 자작극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서 네티즌들과 경찰, 보육원 관계자들과 경주여고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지난달 5일에 경주여고에서 자신이 살던 보육시설에 장학금 관련 서류를 가져다주겠다고 한뒤, 연락이 두절됬었다. 실종신고를 받은 경주경찰서는 전담반을 꾸렸고, 실종 다음날 오전 김은비의 핸드폰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기지국이 경기도 용인 수지부분이였기에 용인경찰서와 공조수사를 벌여왔었습니다.

그러나 김은비의 소재가 확인된 것은 2월 2일, 김은비의 외삼촌의 신고로, 수원에 사는 어머니 집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자신을 버렸다는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에 자진출두를 했었는데...

그렇게만 끝났으면 괜찮은 일이겠죠...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뜻밖의 그녀는 성애원에 들어갈 때 이름과 나이를 속였었고, 어머니가 써줬다고한 편지조차도 자작이였던걸로 밝혀졌습니다.

김은비는 실제 1989년생의 이모씨인걸로 밝혀졌고, 친구들에게 김은비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 사립대병원 의사인데 의료사고로 자신이 이곳에 와있다는 이야기와 사촌동생이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가 왜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김은비라는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에서 4년동안이나 학교를 다녔는지.. 또 왜 갑자기 사라진건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것은 없습니다.

지금 성애원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네티즌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경주여고 홈페이지는 이 사건에 대하여 잠잠하지만, 누군가가 올린글이 이번 사건의 폐허를 짐작케 해주고 있습니다. 


학생인지 네티즌인지, 누군가가 비회원으로 경주여고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그 학생때문에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은 어떻게 할것인가...


내신 재산출은 불가능하다는 코멘트가 그녀의 자작극이 한 학교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는것을 느낄수 있게 해줍니다.

이하 댓글을 단 네티즌들도 하나같이 드라마, 영화같다는 이야기를 남깁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런말 하죠.. "다시 초딩으로 돌아가서 맨날 1등만 하겠다."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에 합격하고.. 거기에다가 지역의 명문이라는 경주여고에 들어가서 상위권 학생으로 있고...

이 말이 김은비라는 가상의 인물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버린듯 싶습니다.

--내가쓰고도 왜이리 씁쓸한지... 저 마지막댓글은 제가 달았습니다..--
경주여고 사이트에 올라온 항의글: http://gyeongju-g.hs.kr/?act=board.read&code=1310&id=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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